노래 보따리/옛 노래 이야기

[스크랩] 직녀성 / 백난아

송명 2013. 1. 6. 05:16

 

 

 

직녀성  / 백난아

 

 

1.낙엽이 정처없이 떠나는 밤에
꿈으로 아로새긴 정한 십년기
가야금 열 두 줄에 시름을 걸어놓고
당신을 소리쳐서 불러본 글발이여.

2.오작교 허물어진 두쪽 하늘에
절개로 얽혀 높은 견우직녀성
기러기 편지주어 소식을 주마기에
열 밤을 낮삼아서 써놓은 글발이여.

3.시름은 천 가지나 곡절은 하나
정 하나 잘못 주어 헝클은 꿈아
달 한 쪽 걸어놓은 북방길 아득한데
냉수를 기름삼아 빗어본 참빗이여.

 

 

 

 

백난아(白蘭兒, 1923년 5월 16일 ~ 1992년)는 함경북도 청진시 출신의 대한민국의

가수이다.본명은 오금숙(吳金淑)이다 약력 1923년 5월 16일 함북 청진에서 태어났다.

1927년생이라는 설도 있지만데뷔 연도와 여러 가지 상황을 미루어 짐작해 볼 때 신빙성은

 떨어진다서울 양재고등여숙을 졸업하고, 1940년 태평레코드와 조선일보가 공동으로 주최한

 콩쿠르 대회에서 2등으로 입상하였다같은 해, 선배가수 백년설에게 백난아’라는 예명을 받고,

오동동 극단을 취입하였다. 〈오동동 극단〉이 히트되자 그녀는 계속 갈매기 쌍쌍〉,

〈망향초 사랑〉, 땅버들 물버들〉, 도라지 낭랑〉, 〈아리랑 낭랑〉, 〈찔레꽃〉,흥아의 봄〉

 등을 취입하였다.대한민국이 일본에게서 해방될 직전까지 태평레코드에 전속으로 있으면서,

많은 인기를 얻었다.해방 직후에는 ‘파라다이스 쇼단’을 운영하며 대한민국 전국 순회공연을

다녔고 1949년부터는 럭키레코드 전속으로 〈금박댕기〉, 낭랑 18세〉, 고려레코드에서 인도야곡을 발표했다. 그러나 곧 한국 전쟁이 일어났고,그녀는 전쟁 중 연예인들의 아지트였던 대구로 피난하였다.그 곳에서 여러 연예인들과 활동하며 한때는 군예대에서 활동하기도 하였다.전쟁 후에는

태평레코드와 서라벌레코드에서 활동하며, 멕시코 나이트〉, 〈고랑포 아낙네〉등을 취입하였다. 1960년대까지도 활발히 신곡 취입을 하였으며,그 이후에는 주로 극장무대에서 활동하였다.

본격적인 TV시대가 열리면서, 그녀는 원로가수대접을 받으며 방송출연을 활발히 하였는데

특히 〈가요무대〉에서 자주 출현하였다. 그러던 중, 1992년 대장암이 발병했고,

평소 지병이던 심장병이 겹쳐>결국 70세로 세상을 떠났다

출처 : 별들의 고향
글쓴이 : 고 향 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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