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따라 삼천리

[스크랩] 사랑방 야화(전화위복)

송명 2013. 4. 6. 07:55

 

 

 

전화위복

 

 

공씨댁은 설움이 북받쳤다. 동네 여자들이 한양 구경을 가는데 혼자 빠질 판이다. 맏아들에게 한양 구경 가겠다고 얘기했더니 “이 보릿고개에 어찌 그리 한가한 말을 한다요.” 핀잔을 주었고, 고개 너머 둘째아들에게 얘기했더니 “사람만 북적거리는데 뭣하러 사서 고생하려고 그래요.” 퇴박을 줬다.

그날 밤 공씨댁은 이 생각 저 생각에 한숨도 못 잤다. 공씨 가문에 시집온 게 벌써 스물네 해다. 시름시름 앓던 신랑이 죽고 몇년 후 시부모도 이승을 하직하자 몇마지기 안 되는 논밭이지만 혼자서 농사짓고 길쌈하며 이를 악물고 두 아들을 키웠다. 매파가 좋은 재취자리를 얘기할 적마다 호통쳐 내쫓고 몸이 달아오른 밤이면 허벅지를 바늘로 찌르며 두 아들만 생각하고 살았다.

이제 두 아들을 차례로 장가보내 먹고살도록 논밭도 다 나눠 줬더니 두놈 모두 제 각시만 위하지 에미는 안중에도 없다. 42년 인생이 설움으로 꽉 차더니 분으로 변했다. 공씨댁은 이웃집 밭매기를 해 주기로 하고 품삯을 미리 당겨 한양구경값을 치렀다.

아지랑이 가물거리는 봄날. 동네 여자들은 인솔자를 따라 한양 구경 길에 올랐다. 종로 뒷골목 방물가게에 들러 다들 바늘함을 산다, 노리개를 산다, 하는 동안 공씨댁은 수중에 돈이 없어 가게 밖에 우두커니 앉아 기다리다 깜박 졸았는데 깨어 보니 일행들이 없어졌다. 눈이 동그래져 이리저리 정신없이 쏘다니며 찾았지만 허사였다. 날은 저물고 발걸음이 천근만근이 된 공씨댁은 쓰러지고 말았다.

젊은 선비가 집으로 들어가다 대문 옆에 웬 여인이 쓰러진 걸 보고 하인들을 시켜 집으로 데려갔다. 정신을 차린 공씨댁은 자신을 간호해 주는 안주인인 듯한 젊은 여인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안주인은 친절하게 저녁밥을 먹여서 침모방에 재웠다.

이튿날, 공씨댁이 일어나 보니 그 집은 큰 부잣집이었다. 사랑채, 안채에 솟을대문이 고랫등처럼 솟아 있고 곳간이 여러 채였다. 그날 공씨댁은 안주인을 따라 차근차근 한양 구경을 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이제 집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걱정하니 젊은 안주인은 환하게 웃으며 “걱정하지 마십시오. 때가 되면 하인들이 가마에 태워서 모셔 드릴 겁니다.”

공씨댁이 부엌에 들어가 “나도 일하고 밥을 얻어먹으면 마음이 좀 편할 건데….” 했더니 “이 술상을 들고 사랑방에 가서 아버님께 술 한잔 따라 드리고 오시지요.”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허우대가 멀쩡한 초로의 어른이 인자한 모습으로 술상을 받았다. 술 잔을 따르고 나왔더니 젊은 안주인이 공씨댁 두손을 잡고 “어머님이라 부르게 해 주십시오.” 했다. 돌아가는 사정을 알게 된 공씨댁이 그날 밤 곰곰이 생각하니 분명 이것은 화가 아니고 복이다.

다음날 아침, 공씨댁을 발견했던 이 집의 주인 선비가 “어머님 잘 주무셨습니까?” 문안 인사를 하는 게 아닌가. 그날 저녁 안주인이 공씨댁을 데리러 왔다. 금침을 깔아 놓은 방에서 3년 전 홀아비가 된 안주인 시아버지와 공씨가 합방을 하게 됐다. 닭이 우는 새벽녘에야 눈을 붙인 공씨댁은 새 남편의 힘이 그렇게 센 줄 몰랐고 자신 또한 그렇게 뜨거울 줄 몰랐다.

1년이 흘렀다.

시골 맏아들 집에서 에미가 행방불명이 된 날을 기일로 잡아

제사를 지내는 그 시간에

공씨댁은 새 남편과 쿵덕쿵덕 운우의 정을 나누고 있었다.

출처 : 한마음 마음이 마음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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